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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뻔쯤은 제주살이에 대한 로망이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한달살이나 일년살이 혹은 아예 제주로 이주를 해서 제주 도민으로 살아가는 방법도 있겠다. 이제 제주에 온 지 10개월 가까이 된 사람으로 제주살이의 로망이 현실이 된 이야기를 해보겠다.

제주도 보름살이가 불러온 인생 최대의 위기

"우리 제주도 한달살이 한 번 가볼까?" 동생이 조금 이른 퇴직을 하고 본인에게 선물로 제주도 한달살이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코시국이라 해외도 못 나갔으니 제주도 한달살이는 제법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동생은 퇴직을 한 상태고 나는 일을 하는 사람인지라 한 달씩이나 자리를 비우기는 쉽지가 않아서 결국 한달살이는 보름살이로 협의했다. 어디 한 군데서만 지내면 길거리에 시간을 많이 버리게 되니까 동서남북으로 며칠씩 숙소를 옮겨 다녔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계획 없는 15박 16일의 느긋한 여행은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마치 제주가 고향이었던 것처럼 향수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제주에 연세 나온 게 있는지 부동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딱히 정확하게 제주로 가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수많은 매물들을 보면서 이런데 살면 좋겠다 혹은 여기는 너무 제주스럽다 등등의 대리만족을 하면서 한 달을 보냈을 때 동생이 제주에서 카페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카페에 쓰임새 있는 것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메뉴가 걱정이 되지는 않았고 나름 클래스를 잘 운영해 왔던 경력자여서 약간 아니 많이 구미가 당겼다. 그래서 급속도로 제주행 티켓을 끊고 부동산 업자를 만났으나 맘에 들지 않아서 제주에 온 김에 하루 묵으면서 다음날 카페투어나 하고 가자고 했는데.... 다음날 우리가 갔던 곳이 월정리였고 그곳이 왜 그렇게 이쁘던지 무엇에 홀린 듯 빈 매장을 계약해 버렸다. 그리고 인테리어가 시작되었고 22년 8월에는 카페를 오픈하게 되었다. 아직 운영한 지 1년이 안되었지만 제주와 본업을 위해 육지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결국은 두 가지 다를 놓치는 결과를 안게 되었다. 붙박이로 있던 동생이 제주를 떠나면서 그 많았던 클래스들은 제주에 있을 만큼 날짜 조정이 어려워서 수업을 잡기가 힘들었다.내 인생에서 이렇게 한가하게 키보드 두드릴 시간이 있었던가?이는 곧 위기였다.

어서 와 카페는 처음이지?

인테리어를 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좋은 소장님을 만나서 큰소리 한번 없이 예정된 날짜에 추가 공사비도 들어가지 않고 잘 마무리가 되었는데 이건 정말 행운 중에 행운이라고 했다. 오픈까지는 정말 순조롭게 지났고 그때가 여름이라 매출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나.... 겨울이 되면서 왜 많은 카페들이 방학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손님들이 줄고 대형카페 위주로 다니는 사람들은 작은 개인카페를 첨부터 검색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조언을 하자면 특별한 메뉴가 있거나 작아도 사진 수집장 찍어댈 만큼의 포토존이 있거나 뭔가 꽂힐만한 게 있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SNS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뭔가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했지만 그냥 깔끔하고 맛있다는 것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 매장은 육지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매장일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 비우고 세컨드하우스 개념으로 제주에 있을 때는 오픈하고 육지로 나갈 때는 닫아 둔다. 장사하는 집이 그러면 안 되지만 혼자 남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폐업이냐 메뉴변경으로 재정비를 하는 것이냐 그것이 숙제로 남아 있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 제주에 혼자 온다면 이겨내야 될 것들

정말이지 제주살이 1년도 안되어서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줄은 상상을 못 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꿈꾸며 살아가니까 나라고 별반 다를 게 있을까? 다만 1년 제주살이를 하고 접는다면 금전적인 손실이 뒤따른다는 것. 물론 처음부터 일이 아니고 단순하게 1년간 일을 안 하고 먹고사는 것을 생각하고 내려왔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고 내 글이 필요도 없을 것이지만 창업을 하기 위해서 온다면 진짜 충분히 생각하라는 것이다. 대구에서 살다가 제주로 내려왔을 때 처음엔 모든 게 좋았다. 모든 날들이 아름다웠고 모든 순간들이 힐링이었다. 하지만 길거리를 쏘다니는 뱀을 만나고, 공황장애로 약을 먹고 있던 동생이 코로나로 자가격리 중에 지네에게 머리를 세 군데나 물린 후 호흡곤란이 올 수도 있다면서 구급대원이 응급실에 데리고 갔다. 그때부터 동생은 뱀과 지네에 대한 공포심이 컸고 제주의 시골이라 병원도 1시간 걸려서 나가야 했던 터라 결국 제주를 떠났다. 우리 집은 세스코 때문인지 모든 공간에 벌레가 나오지는 않았다. 제주 중에서도 시골에 살고 있다 보니 인프라가 구축이 되어 있지 않아서 무언가 하나를 하려고 해도 차를 타고 멀리 나가야 된다. 게다가 제주에는 아는 사람도 없다. 기쁨과 슬픔을 공유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건 사막에 던져진 기분이다. 이제 겨우 결이 맞는 친구가 몇 명 생겼다. 하지만 그것도 한 달에 한번 정도밖에 만나 지지 않는다. 결론은 사람, 벌레, 문화생활, 기후 등등 이겨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다. 참 날씨 이야기가 빠졌는데 생각만큼 화창하고 맑은 날이 그리 많지는 않다. 바람도 많고 우린 바닷가 마을이라 더 심해서 태풍이 올 때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런저런 것들을 다 이겨내고 자리 잡으려면 최소한 몇 년은 걸릴 것 같다. 어떤 분은 가족이 다 내려와서 아이가 학교서 따돌림을 당하는데 제주시가 아니라 시골생활을 하다 보니 같은 학년의 학생들이 6학년 졸업 할 때까지 같이 올라가서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겪어야 될 것을 생각하니 시골 생활 못하겠다면서 제주시로 이사를 하신 것도 봤다. 이렇듯 단순하지만은 않은 제주가 그 고비들을 넘기면 아예 오래도록 눌로 붙게 되는 참으로 이상한 곳이기도 하다.